미국 환경인종차별주의의 고발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칼럼 · 2020/06/26

기후사회연구소 한빛나라 소장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기후변화는 서로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피해자가 같기 때문이다. 조지 플로이드에 앞서 2014년 경찰 무릎에 깔려 목숨을 잃은 에릭 가너는 천식을 앓고 있었다. 뉴욕에서 그가 살던 곳은 미국 폐협회로부터 오존 오염도 F점을 받았다. 미 흑인의 68%는 석탄발전소 반경 50킬로 이내에 거주한다. 허리케인의 피해를 많이 보는 미 남부지역 또한 흑인 인구가 많다. 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기록된 카트리나가 강타했던 뉴올리언스는 흑인 인구가 70%를 넘는 미국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세수가 부족해 15년이 지난 지금도 복구가 진행 중이다.

 

최근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사회적 약자와 기후변화의 관계를 부각한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저소득층, 노약자, 장애인, 여성에 더 심각하다. 기후변화는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를 준다. 그런 측면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일면 통한다. 환경운동가가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와 협력해야 하는 까닭이다. 최근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종차별 반대를 지향하는 기후운동(anti-racist climate movement)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환경운동 내에도 인종차별주의는 만연하다. 미국 텍사스서던대학교의 로버트 벌라드(Robert D. Bullard) 교수는 백인이 이끄는 환경단체에 훨씬 많은 기부금이 집중됨으로써 흑인 환경운동가들이 차별받고 있다며 환경인종차별주의(environmental racism)를 지적한다. 흑인은 기후변화와 싸우는 동시에 환경운동 내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와도 싸워야 하는 설상가상의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지구온도 상승폭을 1.5℃로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흑인 활동가에 대한 차별쯤은 묵인해도 되는 걸까? 과정의 공정성 말이다. 기후목표 달성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진정한 의미의 정의실현이다.

 

환경인종차별주의의 고발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저탄소 에너지 전환을 통해 탄소제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역시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카토비체에서 개최된 유엔 기후총회는 ‘연대와 공정한 전환에 관한 실레지아 선언’을 채택했다. 탈석탄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고려한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전환 대상 업계 종사자들이 전환의 피해자가 아니라, 전환의 주역이자 수혜자로서 전환 시스템에 편입될 때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전환을 실현할 수 있다.

 

‘공정한 전환’은 1990년대 환경정책으로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직업안전보건을 보장하기 위한 북미 노동계 담론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국제적으로 환경계, 산업계, 여성계, 정치계 등 다양한 부문의 주요 사상과 접목되며 보다 다양한 가치를 아우르는 포괄적 담론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에서는 민주노총이 정부 출범 첫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면 공정한 전환을 둘러싼 이 ‘계파 간’ 연대는 과연 얼마나 공고할까? 아쉽지만 에너지 전환에 대한 범노동계의 지지가 이뤄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지금은 한국 노동계와 기후·환경계의 연대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하다.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부문의 탄소제로 달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환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노동자와 지역 커뮤니티를 보호하고, 전환의 과정이 기존의 다양한 사회적 차별을 완화하도록 부문 간 연대에 바탕한 포용적이고 공정한 전환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 반쪽짜리 전환에 그칠 것이다. 네덜란드의 노동계는 클린 에너지 기술 개발과 에너지 전환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환경단체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같이 부문 간 연대를 바탕으로 공정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이행하는 국가는 더 부유하고 공정하며 청정해질 것이다. 이미 많은 선진 국가에서 에너지 전환을 두고 서로 대척점에 있을 것 같은 노동계와 기후·환경단체가 손을 맞잡고 공정한 전환을 호소하고 있다. 왜냐하면 궁극의 목적은 서로 같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이러한 메시지를 읽어낼 때가 됐다.

 

* 한빛나라, 김윤성, 문효동, 김지은(2020), 「‘공정한 전환’을 위한 한국적 맥락 탐색 : 석탄발전 부문을 중심으로」, 기후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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