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의 ‘비난할 권리’에 대하여

칼럼 · 2020/09/14

기후사회연구소 한빛나라 소장

 

지난 3일 국무조정실 주최로 “기후변화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에 대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 있었다. 방송을 본 청년들의 반응은 이랬다. ‘토론이 왜 이렇게 느긋하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기성세대에게 기후변화 문제를 맡겨둘 순 없겠어요’.

 

한 청년활동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저 같은 청년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텀블러 사용하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정도라 너무 답답하다’며 기성세대의 무관심과 무능함을 통탄했다. 나는 그 청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대부분의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것도 딱 그 정도라고. 기성세대라고 특별히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생활습관을 가진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뾰족한 방법을 알고 있지도 않다고 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영향력을 가진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다. 그런데 리더는 혼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품소비자이자 정책소비자인 개인들이 내는 시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래세대와 기성세대는 서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당신들은 대기에 배출한 수천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임무를 우리세대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 모든 미래세대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우리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작년 9월, 16세의 그레타 툰베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당신들’, 즉 기성세대의 무책임을 미래세대의 이름으로 통렬히 비난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것이 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에 대해 책무를 가져야 하고, 미래세대는 기성세대에 이를 당당히 요구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세대와 기성세대는 서로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가? 철학자 아네트 바이어(Annette Baier)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권리를 보호받아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기성세대의 책무는 미래의 특정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갖게 되는 권리에 대한 것으로, 기성세대는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래세대는 인류라는 포괄적 개념에 흡수되며 미래세대라는 세대적 의미는 희석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미래세대가 누구인가? 툰베리는 미래세대에 우리세대(my generation)를 포함시켰다. 아마도 그녀의 세대 이후부터는 미래세대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30대는 어떤가? 앞으로 살 날이 살아온 날 보다 많은 나이가 기준이라면 40대도 미래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 미래세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시점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품은 청년세대도 엄밀히 말해서 미래세대는 아니다. ‘미래의’ 세대와 ‘미래가 있는’ 세대는 구분해야 한다. 미래세대는 기준이 되는 시점에 따라 항상 변한다. 그래서 미래세대는 일종의 상징이다. 현재에는 미래세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를 미래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세대 갈등적 프레임으로 전개할 하등의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미래세대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은 청년들에게만 배제적으로 허용된 권리가 아니며, 누구든지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의무이다. 돌잡이부터 100세 노인까지 우리 모두가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현 인류를 ‘기후변화를 야기한 세대’와 ‘피해를 입은 세대’로 양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추출경제 시스템 안에서 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불필요한 갈등은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들고 기후변화 대응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지금은 세대 간의 갈등과 반목을 동력으로 삼지 말고 협력의 긍정을 교두보로 삼아 전 세대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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